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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그리고 희망의 영화 노매드랜드 줄거리, 리뷰

by 찐ol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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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그리고 희망의 영화 노매드랜드 줄거리, 리뷰

영화 노매드랜드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는 아니다. 그것은 이영화가 동일한 제목의 논픽션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데 원작자인 제시카브루더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붕괴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원래의 삶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집이 아닌 캠핑카 안에서 생활하며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유동민으로 살아가게 된 현상에 주목하고 직접 그 유동민의 삶을 따라다니며 관찰한 기록을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유동인물 중 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도로 위 그의 삶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1월 31일 석고보드의 수요 감소로 인해 88년 만에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있던 us gypsum 공장 중 한 곳이 문을 닫게 되고 엠파이어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 자체를 잃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보와 펀 부부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보는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고 자신의 삶에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 펀은 작은 캠핑카를 개조해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든 뒤 유동민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미국 대륙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물류센터, 농장, 국립공원 등 다양한 곳에서 그때그때 가능한 일자리를 찾아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상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과연 펀은 마음속의 상실감을 내려놓고 편해질 수 있을까?

영화 속 실제 배우인 펀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펀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같은 역할의 유동민 역할의 테이브를 연기한 데이빗 스트라탄 두 명뿐이고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실제 유동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원작자인 제시카 브루더와 삶을 연구할 때 만났던 실존 인물들이 영화 속에 출연하여 극의 사실감을 더했다고 한다. 주인공 펀 역할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영화 쓰리, 빌보드로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배우인데 원작인 책을 접한 뒤 제작자로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 프란시스 맥도맨드라고 한다. 프란시스는 주인공인 펀의 캐릭터에 실제 자신의 삶을 녹여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노력 중 하나로 캠핑카에 자신이 실제 사용하던 물건들을 채워 넣었는데, 그중 하나인 단단풍 접시세트와 아버지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실제 프란시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한다. 이렇게 프란시스는 촬영 이외의 시간에도 캠핑카 안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며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유동민의 삶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다. 영화 초반, 펀이 아마존의 물류창고에서 일을 할 때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가족을 마주치게 된다. 가족 중에 한 명인 소녀가 펀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 엄마가 노숙자라고 하던데 맞나요?" 펀은 노숙자가 아닌 집이 없을 뿐이야.라고 답한다.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한 곳에 정착하여 예전처럼 살아가기에는 펀의 마음속에 큰 우울과 상실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상실의 빈자리는 결코 상실될 수 없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떨쳐 내기 위해 시작한 유동민 생활과 선구자라고 이름을 붙인 캠핑카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일상이 되고 그 삶에 길들여지게 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집이란 기둥이 땅에 박혀있고 움직이지 않은 몸을 뉘어 쉴 수 있는 곳이라면, 홈이라는 것은 정서적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 쉴 수 있는 곳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펀에게 선구자란 집이 아니라 홈에 의미가 좀 더 클 것이다. 그래서 선구자가 고장 났을 때 고장 난 차를 팔고 새로운 것을 사라는 사라는 말에 그녀는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다.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차는 그냥 팔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난 거기서 살아요. 거기가 내 집이라고요."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모습이 고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녀가 선택한 삶이다. 사실 펀이 머물러 살아갈 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초반에 만났던 가족들도 그녀가 원하면 함께 와서 지내도 좋다고 했고 길거리에서 만난 교회사람도, 이곳저곳을 다니다 만난 유동민들도, 결정적으로 그녀의 여동생 또한 그녀가 원하면 자신들의 집에서 함께 살아도 좋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펀도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의 집에서 살아보려고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인지 아니면 유동민으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결국 그녀는 지붕이 있는 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길 위에서의 펀의 삶은 위태로워 보이진 않는다. 여동생의 집을 떠나 유동민이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선 다른 유동민인 스완키의 죽음을 마주한다. 다음날 펀은 유동민 대표와 아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세상을 떠난 밥의 이야기와 대표의 아들의 죽음. 서로 말하기 쉽지 않은 대화를 이어간다. "사람들을 돕고 섬김으로써 아들을 기릴 수 있다는 것, 하루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당신은 보를 다시 만날 것이다." 그렇게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길 위에서 발견하는 희망을 통해 마음속의 큰 구멍이 조금씩, 조금씩 다시 메워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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